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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두컴컴한 방 구석에서 교복을 입은 한 소녀가 울고있다. 세상을 보고싶지 않다는듯 양 무릎에 두 눈두덩이를 부비면서.
"보고 싶지 않아... 보기 싫단말이야..."
"왜...왜 나만 저런게 보이는거야...흑...흑..."
그렇게 중얼거리며 하염없이 울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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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은 아주 어릴 때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그것을 볼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 자체가 원체 드물었기에, 처음 보았던 것이 5살 때였을 뿐이다.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보게 될 일이었다. 다만 그녀가 그것을 처음 보았던 것이 어머니에게서 였다는 사실이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세인이 그것을 처음 보게 된 날 또한 여느날들과 다르지 않았다. 세인은 언제나처럼 밖에서 흙장난을 치며 놀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집으로 돌아갔고, 세인의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오늘은 뭐하다 왔니' 하며 환한 웃음으로 세인을 맞아주었다. 하지만 그날의 어머니는 여느날들의 어머니와는 달랐다. 적어도 세인의 눈에는 달라보였다.
"엄마,왜 검은색이야?"
질문 그대로의 의미였다. 세인의 눈에는 어머니가 검은색으로 보였다. 어머니 주변의 공기만 검은빛이 감도는것 같기도 했고, 집안에 드는 빛이 어머니에게만 닿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검은색을 띄고있었다.
보통의 어른이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아직 말하는게 서투른 아이가 주어를 생략하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뭐가 말이야?' 하고 되묻는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인의 어머니는 그 질문의 의미를 알고있었다. 무당이었던 그녀는, 딸의 말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있었고, 자신의 딸이 그런것이 보이는 이유가 자신 때문임을 알고 있었고, 딸이 자신에게서 그것을 본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세인을 안았다. 그리고 흐느꼈다. 자신의 어린딸이, 그것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슬픔을 겪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그녀를 자신이 보살펴 줄수 없다는 사실이 원통했기 때문에.
"미안해...세인아....엄마가 미안해...흑..흑.."
그로부터 사흘 후,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벼락맞아 쓰러진 거목이 우연히 곁을 지나던 세인의 어머니를 덮쳤고, 그녀는 그렇게 죽었다.
우연한 죽음이었다. 누가봐도 나무가 쓰러질 당시 옆을 지나던 세인의 어머니가 운이 없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인은 자기 어머니의 죽음이 자기가 보았던 검은색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것은 틀린 생각이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구나, 검은색은 위험한 것이구나, 하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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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이 두번째로 그것을 보게 된 것은 그녀가 9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내진 보육원에서였다. 이번에는 선생님이었다. 보육원 선생님들중 가장 세인을 아껴주었고, 그래서 세인이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젊은 남자 선생님이었다.
세인은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선생님을 보았을 때, 마시고있던 물컵을 떨어뜨리는 줄도 모르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것이 어머니에게서 보았던 검은색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것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일 처음 한일은 선생님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검은색으로 변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이번에는 선생님이 검은색이라고, 그러니까 조심하시라고,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당연히 그 선생님은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세인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주고나서는 피식 웃으며,
"그런 장난은 치는게 아니야,세인아"
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세인을 타일렀다. 세인은 억울했지만, 거듭 말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믿어주지 않을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 선생님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누가 들었더라도 그저 열살배기 꼬맹이가 치는 조금 짓궂은 장난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세인은, 그 위험한 것이 선생님을 덮치지 못하도록 선생님을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자신이 따라다니면 그 위험한 것으로부터 선생님을 지킬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바램일 뿐이었다. 추적 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선생님이 검은색으로 변한지 나흘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보육원 아이들이 마실 우유를 사기위해 길을 나선 선생님과, 그를 따라나선 세인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단지 한 발짝 차이였다. 세인은 선생님의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세인의 한 발짝 앞으로, 빗길에 브레이크가 고장난 듯한 트럭이 휑하고 지나갔다. 화들짝 놀라 자빠진 세인의 눈에 들어온것은, 처참히 짓이겨진 선생님이었다.
세인은 그자리에 주저앉은 채, 멍한 표정으로 울기 시작했다.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그중 누군가의 신고로 엠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며 나타나고, 선생님을 들것에 실어 나르고, 그동안 나타난 다른 보육원 선생님이 그녀의 손을 잡아 끌때까지, 그녀는 미친사람처럼 초점없는 눈동자로 빗물에 흘러가는 붉은 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있었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죽을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했던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었고, 그런 것들을 제외하면 그녀가 할수 있었던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예상했던 결과를 바꾸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만이 납덩이처럼 가슴 한구석을 짓누를 뿐, 해야 했던것도 하지 않았던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그래서 후회조차 할 수가 없는 이 상황과, 무력한 자신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그렇게 한참동안 비를 맞으면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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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이 세번째로 그것을 보게 된 것은 17살 때였다. 세인은 17살이 되면서 어머니가 남긴 돈으로 보육원을 나와 자취를 시작했다. 고등학교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대를 하면서, 배정받은 고등학교에 배치고사를 치기위해 처음 등교한 날이었다.
학교를 보자마자 세인은 제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져서, 처리가능범위를 한참 넘어선 명령을 전달받은 구식 컴퓨터처럼 머릿속이 새하얘져서는, 한참동안을 제자리에 굳어서 학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학교가 검은색이었다. 이제까지 본적도 없을만큼 거대하고, 그래서 더 칠흑같이 어두운,
검은색의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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옜날에 아나툰할때 예고편 올렸었던 만환데 결국 안했었죠. 재수하고 삼수하고 한의대 공부하고 하면서 공부할시간이 없기도 했는데
소설로나마 써보네요. 얼마나 쓰게될지는 모르겠네요 헤헤
그나저나 아나클렌 소게가 왜케 죽었나염 글쟁이 동방이라님 세이즌님 다 머하심매?
저 과제해요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