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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호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세인을 잠시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돈은?"
짧고 간명한 그 말에는,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재호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물음이었으나, 세인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것처럼 멍해졌다. 도와달라고 말을 하는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기에, 그 도움의 보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탓이었다.
"아...?"
"나는 자원봉사자가 아니야. 퇴마사지."
재호가 멍해진 표정의 세인을 보면서 한번 더 선을 그었다.
"어..음..."
세인은 당황해서 할 말을 찾지못하고 어물거렸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퇴마사란 직업이고, 직업이란 돈을 벌기위해 하는 일이었다. 그의 직업에 관련된 일이라고 무작정 도와달라고만 말한 것은 지극히 무례한 일이었고, 세인도 금방 그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세인이 당황한 이유는, 재호의 무심한 말투로부터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위화감 때문이었다.
"돈이 없다면, 이만 나가 봐"
자꾸만 멍해지는 세인을 보면서 슬슬 짜증이 난 재호가 차갑게 손짓하며 말했다.
세인은 그 말을 듣고서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에 확신을 가졌다. 처음에는 그저, 좀 많이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마디 한마디가 무성의하고 차갑게 느껴지는 것인줄 알았다. 자기가 도와달라고 말했을때, 대뜸 돈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애써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이 남자의 언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자기 자신이 부정당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꿈틀거렸다.
"얼만데요?"
세인의 목소리도 낮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재호의 것과는 달리 어떤 감정에 가득차 얕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분노였다. 줄곧 자신감없이 풀죽어있던 그녀의 눈동자는 또렷하게 재호를 향해 이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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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세인의 발음은 여느때보다 정확했지만, 재호는 당황해서 그것을 되물었다. 당연히 포기하고 풀죽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소녀가, 자신을 향한 뚜렷한 분노를 내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퇴마 비용이, 얼마냐구요"
세인은 좀전보다 더 크고,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 또박 끊어 말했다. 재호는 그녀의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잠시 쳐다보다가, 습관처럼 후드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선수금 50만. 귀신의 숫자와 그 한의 깊이에 따라 퇴마 완료 후 추가금을 받는다."
"윽..."
세인이 분한듯 입술을 앙다물며 고개를 숙이자, 재호가 물었다.
"돈이 없나?"
"당장은...없어요...하지만 꼭 드릴게요..."
세인이 조금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재호에게는 이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다. 이사장도 뭣도 아닌 단지 학생일 뿐인 이 소녀가, 도대체 왜 자비를 들여서까지 학교의 귀신을 퇴마하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이 보일뿐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게 없는 능력이긴 하지만, 알고 피하기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학교를 자퇴할 수도 있고, 전학을 가도 된다.
"이해할 수가 없군..."
재호가 자리에 바로앉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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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말인가요?"
세인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 이해할수 없는건 내가 아니라 당신인데 -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왜 굳이 학교의 귀신을 퇴마하려고 하지?"
생각지도 못한 재호의 물음에 또다시 세인의 말문이 막혔다. 세인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한 이유를 물어왔기 때문이었다. 세인은 말을 한번 더듬으며 되물었다.
"위...험하잖아요?"
"그럼 자퇴를 하거나 학교를 옮기면 되잖아."
재호는 처음의 무심하고 무정한 말투 그대로, 막힘없이 말을 받았다. 세인은 또다시 재호에게서 아까의 위화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 학교가 위험하다구요. 저는 그럴수 있어도 다른사람들은 계속 위험하잖아요?"
세인은 그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면서 그렇게 다시 설명했다. 하지만 재호는 세인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도, 다른 의미로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너랑 상관 없잖아?"
여전히 무심하고, 무정한 말이었다. 세인은 그 말을 듣는순간, 머릿속의 무언가가 정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심하고, 무정한 말이다. 단지 무뚝뚝한 말이 아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인간으로서 뭔가가 결여되어있다. 세인의 가슴속에서 뜨겁게 꿈틀대던 무언가는 이제는 세차게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사람이잖아요....!!"
세인이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선생님의 죽음을 알고도 막지 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에, 무력감에 항상 시달려왔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뚜렷한 이유가 필요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사람이니까'라는 것이 충분한 이유가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세인이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던 것을, 재호는 상관없는 일로 일축하며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었다. 격분한 세인이 계속해서 소리쳤다.
"사람이, 다른사람이 위험한 걸 아는데, 어떻게 그냥 무시할수가 있어요?? 아저씨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요? "
조용히 세인의 말을 듣고만 있던 재호가 짧게 던지듯 말했다.
"없어"
"이익..!"
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꽉 깨문 입술에서는 시큼한 맛마저 느껴졌다.
세인이 느끼던 위화감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재호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세인은 사람이 이럴수도 있나 싶을만큼 무심하게 말을 내뱉는 그를 마음같아서는 따귀를 한대 올려버리고도 싶었으나, 그래봐야 그는 자신이 분노하는 이유조차도 이해하지 못할것만 같았다.
세인이 그렇게 치솟는 분노에 몸서리를 치며 할말을 찾고있는 사이, 재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도 내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걸지도 몰라"
그러면서 재호는 처음으로, 줄곧 깊게 눌러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겼다.
"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할말을 찾고 있던 세인은, 그 모습을 보고서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정리되지 않은 기다란 머리카락이 가리고는 있었지만 그 모습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계속해서 검게만 보였던 그의 눈에는 흰자위가 거의 없었다. 후드의 그림자때문에 검게만 보인것이 아니라, 한없이 검고 깊게만 보였던 그것이 그 눈의 전부였다. 그의 코는 언젠가 세인이 교과서에서 보았던 서양인의 것보다도 높고 뾰족했으며,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사람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길어보이는 송곳니가 반짝거렸다.
못생긴 얼굴도 아니었고, 늙어보이는 얼굴도 아니었다. 단지 다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사람이라기 보다는, 개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