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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어..."
놀란 세인은 할말을 잊어버린채 말을 더듬었다.
"이제 납득이 됬나?"
"...."
재호가 짧게 물었지만, 세인은 대답이 없었다. 재호는 그런 세인의 움츠러든 눈동자를 보면서, 작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세인조차 눈치채지 못할만큼 아주 미세한 변화였다.
그는 왠지 그녀라면 놀라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고, 딱히 그러기를 바랬던 것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녀라면,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그녀라면 그럴수도 있을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재호가 여지껏 겪어왔고 그래서 예상했던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실망한 재호가 천천히 입을열었다.
"니가 보는것처럼, 난 사람이 아니야. 그래서 난..."
"아니에요...!"
좀처럼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세인이었지만, 재호가 그렇게 말을 시작하자 큰소리로 그 말을 끊었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얇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아저씨는.. 사람이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재호를 처음 만날때와 같이 작아져 있었고, 약간 울먹이고 있었다. 담담하게 자신이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는 재호의 말에서 너무나 깊은 쓸쓸함이 느껴져서 자신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친 탓이었다. 세인에게는 무미건조한 그의 말투가 텅 비어있는듯 했고, 그래서 누군가가 그가 한 말을 부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마치 깊고 좁은 동굴의 안쪽에서 미세하게 울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아련한 것이었지만, 세인은 자신이 느낀것을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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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재호는 너무도 당연하게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고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 타인의 시선들이 재호에게 강요한 생각이었을 뿐 원래 그 자신의 생각은 아니었다.
재호는 그 생김새 때문에 어딜가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하지만 재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있는것은 언제나 불안이었고, 공포였고, 모멸이었다. 그것은 마치 미지의 생물을 볼때나 생길법한 그러한 성질의 것들이었고, 그러한 시선들이 반복되자 언제부턴가 재호는 스스로를 그렇게 여기기 시작했다. 나는 사람들과는 다르구나. 그들과 어울릴수 없는 존재구나 - 하고.
처음엔 작은 차이라고 생각했다. 성격이 조용한걸 좋아했고 어울림을 즐기지 않았을 뿐, 사람을 싫어하거나 스스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만약 누군가 단 한명이라도 재호를 사람을 바라볼 때의 시선으로 봐주었다면, 그래서 재호가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이 괜찮다고 느낄수만 있었더라면 분명 현재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있지 않았고,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게 된 재호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커다랗게 재호의 심장 한가운데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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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저씨는.. 사람이에요..."
재호는 세인의 그 말 한마디에, 담담하게 가라앉아 있던 심장 바닥을 송곳으로 푹 찌르는 듯한 아찔한 감정을 느꼈다. 재호는 그 감정이 너무도 낯설었다. 너무 오랜만에 느낀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처음인 것처럼 느껴져서,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심장바닥을 뚫고 밀려오는 그 낯선 감정을 애써 무시하며 재호는 그렇게 물었다.
"아저씨가 정말로 사람이 아니라면, 그 검은색의 여자분에게 찾아오라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을 거에요."
세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들고 똑바로 재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망울에는 맺혔다가 흘러내리지 않은 눈물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재호는 왠지 그런 세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서, 후드를 도로 뒤집어 쓰고는 꾸욱 눌렀다.
"일감이잖아. 돈이되는"
"거짓말...!"
세인이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분노때문은 아니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연민이었다. 재호가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래서 자신이 느꼈던 것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자꾸만 스스로를 부정하려고하는 재호가 이제는 안쓰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세인은 숨을 고르고, 작지만 또렷한 발음으로 말했다.
"사실은 그 사람을 돕고 싶었잖아요??"
"아니 난.."
재호는 세인의 말을 반박하려고 말을 꺼내다가 멈칫 하고는 도로 말을 삼켰다. 불러낸 사람이 나오지 않은 텅 빈 약속장소에서, 항상 무겁게만 느껴졌던 발걸음이 문득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오래동안 잊고있었지만, 아니 잊으려고 노력해왔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었다. 사실 퇴마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도 귀신이 씌어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게 힘들어서였다. 항상 돈을 벌기 위해서 퇴마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성불해서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귀신을 보면 왠지 모르게 뿌듯한 느낌이 있었다. 다만 스스로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니라고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러한 감정을 억누르며 억지로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니까- 라고.
하지만 지금 재호의 눈앞에 있는 이 소녀는, 어떻게든 그를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어했다. 다시 떠올려 보면, 소녀가 재호의 모습을 처음 볼때 움츠러들었던 눈동자는 예상하지 못한데서 오는 당황이었을 뿐, 공포나 불안, 모멸감 따위의 감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재호가 무의식속에서 오랫동안 바래왔던 것이었고, 그래서 이제는 스스로가 바란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것이었다.
"큭...크크크.."
재호는 후드를 눌러쓴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었다. 처음느껴보는 그러한 그녀의 눈길에서 해방감과 함께 약간의 희열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잠시 웃다가 고개를 숙인채로 물었다.
"너, 이름은?"
"...? 세인이라고 해요. 오세인."
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자, 재호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학교가 검은색이라고?"
"..? 네"
"선수금은 없이. 추가금은 퇴마완료후 의논하지."
여전히 지독하게도 무뚝뚝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세인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번졌다. 무심한 듯한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그에게서 여지껏 잠겨있었던 무언가가 비로소 풀렸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네!!"
세인은 활짝 웃으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녀가 잡았던 희망이라는 밧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항상 혼자만 느껴왔던 그 공포감에서,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평생을 짊어지고 다닌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순간의 상쾌함이었고, 평생을 묶여있었던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의 해방감이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혼자서 그렇게 싱글벙글해있는 세인을 보면서, 재호는 습관적으로 후드를 꾸욱 누르며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의 입꼬리도 미세하게 올라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약간 묘사가 어려운 파트라 한번 써서 올렸다가 지우고 십수번의 퇴고를 거쳐 새로 올리네요.
아직도 썩 맘에들진 않지만 더는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잘 모르겠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