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겨울이라는 계절에 산의 밤은 춥다. 그것이 대륙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보가티에, 그 중에서도 북쪽에 위치한 디에레시 산맥이라면 말할 것도 없으리라. 비록 디에레시 산맥의 가장 높은 카에레스티봉보다는 훨씬 낮고 또한 남쪽에 위치한 디에레시 산맥의 초입이라 할지라도, 겨울 밤의 한기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의 온기를 날려버리고 덮고 있는 모포를 뚫고 스며들어 몸을 떨게 만든다.
그것은 디에레시 산맥이 속한 영지를 다스리는 램스톤 일가가 자랑하는 레인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추위에 대한 완전 무장을 하고 평소에도 추위에 대한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음에도 겨울에는 디에레시 산맥 곳곳에 설치한 초소 부근만을 정찰한다.
해이한 기강이라며 주변으로부터 비웃음을 당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대전쟁 시절에 푸르트의 군대가 레인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겨울을 노려 은밀히 디에레시 산맥을 넘다 일주일 만에 1할의 병사가 동사하고, 3할의 병사가 동상에 걸려 전투력을 상실했으며, 이후 회군했을 때 나머지 중 2할의 병사가 동사하고 모든 병사가 동상에 걸렸던 사건 이후로 누구도 감히 기강에 대한 언급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푸르트는 그 대가로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인투스 강줄기의 북쪽 땅을 이양해야 했다.) 그만큼 악명 높은 디에레시 산맥은 다시금 겨울을 맞았고, 찾아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 외에는 사람의 기척 그리고 심지어 동물들의 기척 또한 존재하지 않는 매년의 겨울이 반복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디에레시 산맥의 겨울에, 산맥 남쪽에 하나의 인영이 있었다. 그다지 두꺼워 보이지 않는 모포만을 두른 채 누워있는 인영에게,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채 가리지 못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나무들이 메마른 가지로 매서운 바람을 갈라 을씨년스러운 소리가 휘도는 그곳은 초겨울의 싸늘함이 느껴졌으나, 인영의 주위에는 모닥불을 피운 흔적조차 없었다. 애당초 겨울에, 그것도 밤에 산속에 들어가 잠을 청할 자도 없겠거니와, 있더라도 땅을 파고 모닥불을 피워 약간의 온기라도 얻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비록 겨울의 굶주린 늑대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더라도 매서운 추위에 백이면 백 그리할 것이었다. 그런 당연한 이치를 벗어 던진 채 덜덜 몸을 떨며 누워있는 그 남자를 본 누구나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을 테지만, 남자의 떨림은 추위로 인함이 아니었다.
‘잘 듣거라! 이것은 너와 나의 목숨을 바쳐야 할 일이다!’
흐릿하게 보이는 노인이 하는 말에 절대 안 된다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을 열어도 말이 나오지 않아 뻐끔뻐끔 입만 움직이는 남자에게 노인이 다가왔다.
‘부디 이것으로 나의 죄가 갚아지기를 바라노라.’
이후 느껴지는 격통은, 꿈이기 때문에 실제로 느껴지는 것이 아님에도 잠에 빠진 남자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고 몸은 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같이 떨렸다. 격통이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남자의 시야가 깜깜해지며 격통 또한 사라졌다. 일그러졌던 얼굴이 펴지고 몸의 떨림 또한 멈춘 남자는 마치 누군가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에 번뜩 잠에서 깨어 일어나 격한 숨을 헐떡였다. 식은땀이 흐르고 찬 바람이 불어 띵해지려는 이마를 훔치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